한 벌의 옷: 제사장 옷과 속옷-겉옷 비유를 통한 칭의와 성화의 통합 신학
소논문 목차
Ⅰ. 서론: 구원 이해의 균형을 위한 비유
1. 연구 배경과 문제 제기
2. ‘속옷과 겉옷’ 비유의 필요성
3. 연구 목적과 방법
Ⅱ. 칭의와 성화: 구별되되 분리되지 않는 구원의 두 차원
1. 칭의의 정의와 특성
2. 성화의 정의와 과정
3. 칭의와 성화의 관계 및 통합 필요성
Ⅲ. 속옷과 겉옷의 신학적 비유: 은혜와 책임의 조화
1. 속옷: 칭의의 은혜로 입는 옷
2. 겉옷: 성화의 책임으로 입는 옷
3. 비유적 적용: 방종과 위선의 경계 넘기
Ⅳ. 성경 본문에 나타난 옷의 구조와 구속사적 의미
1. 이사야 59장과 하나님의 의복
2. 에베소서 6장의 전신갑주
3. 스가랴 3장, 이사야 61장, 골로새서 3장 등 ‘옷 입음’ 본문 정리
Ⅴ. 제사장의 옷: 내러티브 본문에 나타난 구속의 형상
1. 출애굽기 28장의 옷 구성
2. 레위기 8장의 착의 장면
3. 구속사적 의미와 신자 적용
Ⅵ. 창세기 3장의 가죽옷: 한 벌의 옷 안에 담긴 이중적 의미
1. 무화과나무 잎과 인간의 자기의
2. 가죽옷의 상징성과 복음의 구조
3. 속옷과 겉옷의 통합적 은유
Ⅶ. 결론: 한 벌의 옷을 입은 자의 삶
1. 통합된 구원의 삶
2. 목회적, 실천적 함의
3. 신자에게 주어진 복음의 책임
Ⅰ. 서론: 구원 이해의 균형을 위한 비유
1. 연구 배경과 문제 제기
기독교 구원론은 오랜 시간 동안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의 관계를 둘러싼 신학적 논의 속에서 발전해 왔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sola fide)는 선언을 통해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주어진다는 교리를 확립하였다(Luther, Commentary on Galatians, 1535). 그와 동시에, 루터는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강조했으며, 존 칼빈 또한 “칭의는 성화 없는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Calvin, Institutes, III.11.1).
그러나 실제 교회 현장에서는 이 균형이 흔히 무너지곤 한다. 한편에서는 ‘칭의’의 은혜만을 강조하면서 죄의 자각과 싸움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화’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간의 노력과 공로 중심의 율법주의적 구원관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최근 일부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이미 모든 죄가 사해졌기에 회개나 죄 자백은 불신의 표현’이라는 극단적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는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여 이해한 결과이며, 구원의 본질을 왜곡하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를 낳는다(Sanford, 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2002).
2. ‘속옷과 겉옷’ 비유의 필요성
칭의와 성화의 구별은 신학적으로 필요하지만, 실제 신자의 삶에서 이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이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본 연구는 ‘속옷과 겉옷’이라는 의복의 이중구조를 비유로 활용한다. ‘속옷’은 죄와 수치를 가리는 내적 정결함, 즉 칭의를 상징하고, ‘겉옷’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거룩함, 즉 성화를 상징한다. 이러한 비유는 성경 전체, 특히 제사장의 옷을 묘사한 출애굽기 28장과 에베소서 6장의 영적 갑옷 본문, 그리고 스가랴 3장의 여호수아 내러티브에서 유추 가능하다(Barth, Church Dogmatics, IV.1; Wright,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2016).
복음은 단지 죄사함을 선언하는 사건에 그치지 않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칭의와 성화를 함께 입는 ‘한 벌의 옷’이라는 비유는 구원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제공하며, 신자의 정체성과 삶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익하다.
3. 연구 목적과 방법
본 연구는 속옷과 겉옷이라는 의복의 이중 구조를 통하여 칭의와 성화의 통합적 구원 이해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구약의 제사장 착의 본문(출애굽기 28장, 레위기 8장)과 예언서의 의복 언어(이사야 59장, 61장, 스가랴 3장), 신약의 전신갑주(에베소서 6장), 새 사람을 입는 본문(골로새서 3장, 로마서 13장)을 신학적-문학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나아가 아담과 하와의 가죽옷 내러티브(창 3장)를 통해 구속사의 관점에서 '한 벌의 옷' 개념을 제시할 것이다.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관련 성경 본문에 대한 내러티브 분석 및 문헌적 해석을 실시한다. 둘째,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자들(루터, 칼빈, 존 오웬, 존 머레이 등)의 칭의-성화 이해를 고찰하며 신학사적 맥락을 탐구한다. 셋째,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들(John Piper, Michael Horton, N. T. Wright 등)의 논의를 반영하여 실천적-목회적 적용을 시도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본 연구는 ‘한 벌의 옷’이라는 비유가 단순한 설명 도구를 넘어 신자의 구원 체험과 삶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Ⅱ. 칭의와 성화: 구별되되 분리되지 않는 구원의 두 차원
1. 칭의의 정의와 특성
‘칭의’(Justificatio)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죄인인 인간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이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전가받는 데서 비롯된다(Rom. 3:24–26; 5:1). 루터는 이를 “외적인 의”(iustitia aliena)라고 불렀고, 이는 인간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한 ‘전가된 의’(imputed righteousness)이다(Luther, Lectures on Romans, 1515–1516).
칭의는 단회적 사건이며, 반복되지 않는 구원의 시점으로서 작동한다. 이 선언은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죄에 대해서도 효력을 지닌다. 존 머레이는 이를 두고 “하나님은 한 번의 칭의로 완전한 구원의 선언을 하신다. 이는 시간 속의 행위가 아니라 영원한 판결이다”라고 말하였다(Murray,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 1955, p. 121).
2. 성화의 정의와 과정
‘성화’(Sanctificatio)는 칭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실제 삶 속에서 점점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요 17:17; 살전 4:3). 성화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신자의 순종이 함께 작용하는 **신인협력(synergism)**적 구원 여정으로,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갈 2:20)의 실현이다.
성화는 단회적이 아닌 점진적이고 반복적인 특성을 가지며, 신자의 전 인격(이성, 감정, 의지, 행위)에 영향을 끼친다. 존 오웬(John Owen)은 성화를 “죄를 죽이고, 의를 따라 사는 삶의 연속적 실천”이라고 정의하며, 이는 단지 외적 행위의 변화가 아니라 내적 존재의 재구성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Owen, The Mortification of Sin, 1656).
또한 성화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이미 얻은 구원의 은혜에 반응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는 삶이다(Horton, The Gospel-Driven Life, 2009). 성화는 칭의를 향한 보완이 아니라, 칭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열매이다.
3. 칭의와 성화의 관계 및 통합 필요성
칭의와 성화는 그 성격과 적용에 있어 구별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루터는 이 둘을 혼동하지 않도록 강조했지만, 동시에 믿음이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칼빈 역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붙든 자는 반드시 그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된다”고 하였다(Calvin, Institutes, III.11.6).
현대 복음주의 내에서도 이 관계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칭의가 없다면 성화는 위선이며, 성화가 없다면 칭의는 위조지폐”라고 강하게 표현하며, 이 둘의 필연적 연결성을 주장하였다(Piper, Future Grace, 1995).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 또한 칭의와 성화를 ‘은혜 안의 연속적 질서’(ordo salutis)로 설명하면서, 성화 없는 칭의의 주장이나 성화를 칭의의 조건처럼 만드는 오류를 모두 경계하였다(Horton, Covenant and Salvation, 2007).
따라서 칭의와 성화는 ‘순서상 구별’(distinctio)되되, ‘관계상 결합’(conjunctio)되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구원에 대한 성경적이고 통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본 논문에서 사용하는 ‘한 벌의 옷’ 비유는 이러한 관계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다.
Ⅲ. 속옷과 겉옷의 신학적 비유: 은혜와 책임의 조화
1. 속옷: 칭의의 은혜로 입는 옷
속옷은 신체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리는 기본 의복으로서, 인간의 죄를 덮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성경에서 옷은 자주 영적 상태나 신분의 상징으로 사용되며, 특히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입히시는 옷은 ‘의’의 상징으로 기능한다(사 61:10). 칭의는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의의 옷이다. 루터는 이를 ‘외부로부터 주어진 의’(iustitia aliena)라고 부르며,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그가 의인으로 간주되는 사건”이라고 설명하였다(Luther, Commentary on Galatians, 1535).
속옷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지만, 그것 없이는 수치스러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칭의는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새롭게 정의하는 결정적인 행위이다. 이것은 인간의 자격이나 행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은혜의 옷으로, 구약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신 가죽옷(창 3:21)과도 상응한다. 그 옷은 죄와 수치를 가리는 동시에,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존재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2. 겉옷: 성화의 책임으로 입는 옷
겉옷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의복으로서, 신자의 삶 속에 나타나는 거룩함과 의의 행실을 의미한다. 겉옷은 속옷 위에 입는 옷이며, 속옷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이는 곧 성화가 칭의 없이 불가능하며, 동시에 칭의가 있다면 성화는 반드시 나타나야 함을 시사한다.
성경은 이러한 겉옷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에베소서 4:24에서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명령하며, 골로새서 3:12–14에서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의 성화적 미덕을 ‘옷 입는다’는 행위로 표현한다. 이는 성화가 단지 내면적 의도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태도와 실천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겉옷의 개념은 제사장의 옷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제사장은 속옷(세마포 속바지) 위에 청색 겉옷, 에봇, 흉패, 관 등을 입고 공적 사역에 임했다(출 28장). 겉옷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되었음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었다(출 28:2,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 존 오웬은 “성화는 신자의 삶 전체에 걸쳐 겉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복음의 능력을 보이는 외적 증거”라고 표현하였다(Owen, The Holy Spirit, 1674).
3. 비유적 적용: 방종과 위선의 경계 넘기
속옷만 입고 겉옷을 입지 않은 자는 세상 앞에 수치스러운 존재이다. 이는 오직 칭의만을 주장하며 성화의 열매 없이 사는 ‘방종주의’(antinomianism)의 위험을 경고한다. 반대로 겉옷만 입고 속옷이 없는 자는 위선자이며, 진정한 구원을 경험하지 않은 종교적 외식자이다. 이는 성화를 외적으로 흉내 내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은 자의 상태를 보여준다.
존 파이퍼는 이를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성화 없는 칭의는 없다. 그러나 성화를 칭의의 조건으로 여기는 순간, 은혜는 거래로 전락한다”(Piper, Counted Righteous in Christ, 2002). 따라서 신자는 속옷(칭의)을 자랑하면서도, 겉옷(성화)을 입고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입히신 '한 벌의 옷'에 대한 신자의 응답이며 책임이다.
이 비유는 단지 설명의 도구를 넘어서서, 신자의 정체성과 사명, 구원 이해와 실천적 삶 사이의 조화를 이끄는 복음의 이미지로 작용한다. 성경은 신자를 향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롬 13:14)고 명령한다. 이 ‘한 벌의 옷’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자, 신자의 삶으로 증명되는 복음의 능력이다.
Ⅳ. 성경 본문에 나타난 옷의 구조와 구속사적 의미
1. 이사야 59장과 하나님의 의복
이사야 59:17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가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의 투구를 자기 머리에 쓰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이 본문은 하나님 자신이 정의와 구원을 위해 친히 무장하시는 모습을 묘사한다. 특히 이사야는 '속옷', '겉옷', '투구', '갑옷' 등의 군사적/의복적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구속의 하나님이 전투를 준비하는 형상을 드러낸다(Oswalt, The Book of Isaiah, NICOT, 1998).
‘보복을 속옷으로’, ‘열심을 겉옷으로’라는 표현은 하나님 자신의 정체성과 사역이 내면(속옷)과 외면(겉옷)을 포함한 전체적 통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 구조는 이후 신약 에베소서의 전신갑주와 연결되며, 하나님의 속성과 행동이 신자의 구원의 모델이 됨을 보여준다.
2. 에베소서 6장의 전신갑주
에베소서 6:13–17은 신자가 입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여기서 ‘호심경’과 ‘투구’는 내면을 보호하는 방어적 요소이며, ‘신발’과 ‘방패’, ‘검’은 외부로 나아가는 행위적 요소들이다(Arnold, Ephesians, ZECNT, 2010).
특히 ‘의의 호심경’(breastplate of righteousness)은 칭의의 은혜로 해석되기도 하며(Barth, Church Dogmatics, IV/1), 동시에 성화된 삶으로 이해되기도 한다(Moo, Ephesians, TNTC, 2020). 이는 곧 에베소서의 전신갑주가 칭의와 성화를 이원화하기보다는, 구원받은 자의 전인격적 삶을 무장시키는 통합적 상징임을 보여준다.
3. 스가랴 3장, 이사야 61장, 골로새서 3장 등 ‘옷 입음’ 본문 정리
스가랴 3:3–5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은 상태에서 “정결한 옷”을 입는 내러티브이다. 이는 사탄의 고소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입는 ‘칭의’의 상징이며, 동시에 제사장의 직무를 회복하는 ‘성화’의 예표이다(House, Old Testament Theology, 1998). 이 본문에서 옷의 교체는 곧 신분의 변화와 삶의 방향 전환을 상징한다.
이사야 61:10 또한 이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을 내게 입히셨음이라.” 여기서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은 분리된 두 벌이 아니라, 하나의 구원 속에 포함된 이중적 구성이다. 브루에그만(Walter Brueggemann)은 이 구절을 “은혜의 선언과 거룩한 삶의 명령이 함께 주어지는 구속적 상징”으로 평가하였다(Isaiah 40–66, Westminster John Knox, 1998).
골로새서 3:9–14에서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너희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자처럼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칭의와 성화의 연속성을 ‘옷 입는 행위’로 표현한 가장 구체적인 신약 본문 중 하나이다. ‘벗음’(apotithemi)과 ‘입음’(enduo)의 행위는 신자의 정체성 전환과 실천을 동시에 포함하며, 본 논문의 핵심 비유인 ‘속옷과 겉옷’ 개념을 신약적으로 정당화하는 성경적 기반을 제공한다(Dunn, The Epistles to the Colossians and to Philemon, NIGTC, 1996).
이상의 본문들은 단지 상징으로서의 옷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신분과 삶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구조로서 기능한다. ‘입는다’는 행위는 칭의(받는 의)와 성화(사는 의)를 동시에 담는 구속사적 은유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 옷은 한 벌로 주어진 하나님의 복음임을 강조한다.
Ⅴ. 제사장의 옷: 내러티브 본문에 나타난 구속의 형상
1. 출애굽기 28장의 옷 구성
출애굽기 28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입혀질 제사장의 옷을 매우 정밀하게 묘사한다. 여기에는 세마포 속옷, 고의(속바지), 청색 겉옷, 에봇, 흉패, 띠, 관, 이마 패 등이 포함된다. 이 의복의 목적은 “그를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출 28:2)는 명령으로 요약되며, 제사장의 정체성과 사명을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특히 제사장의 옷은 ‘속옷’과 ‘겉옷’의 이중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는 내면적 의와 외면적 거룩을 함께 담는다. 속옷과 고의는 제사장의 하체의 부끄러움을 가리는 정결의 상징이며(출 28:42), 겉옷과 에봇은 그가 공적으로 감당할 직무와 권위를 나타낸다(Childs, Exodus, OTL, 1974). 성경은 이 옷들이 “성결의 표징”이자, 제사장으로 하여금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거룩의 장비임을 강조한다.
2. 레위기 8장의 착의 장면
레위기 8장은 제사장 위임식의 실제적 장면으로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장 옷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착의되는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모세는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고,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아주며, 관을 머리에 씌운다. 이 일련의 과정은 매우 질서정연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라는 반복된 구절(레 8:4, 9, 13 등)을 통해, 제사장의 옷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신적 명령과 은혜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특히 이 장면은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가 실제로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되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오웬(John Owen)은 이 장면을 두고 “하나님이 입히신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단지 정체성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도록 능력을 부여하는 상징”이라 하였다(Owen, The Glory of Christ, 1684).
제사장의 의복은 단순한 기능성 복장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 언약에 동참하는 존재로서의 표지이다. 이러한 착의 행위는 신약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 13:14),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거룩하게 살아가는 과정을 예표한다.
3. 구속사적 의미와 신자 적용
제사장의 옷은 하나의 ‘한 벌의 옷’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속옷과 겉옷, 내면과 외면, 정체성과 실천, 은혜와 책임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이 옷은 하나님께서 입히셨으며, 사람 스스로 준비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제사장의 옷은 칭의(하나님이 입히심)와 성화(그 옷에 합당한 삶)의 구속사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칼빈은 이를 두고 “제사장의 옷은 단지 인간의 직무를 위한 장비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복음의 상징이다. 이 옷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경건으로 살아야 한다”(Calvin, Commentary on Leviticus, 1563)고 하였다.
오늘날 신자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히 4:14–16), 속옷과 겉옷이 모두 갖추어진 한 벌의 옷을 받은 자로서 살아간다. 그 옷은 복음 안에서 주어진 신분의 선언이자, 거룩한 삶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동시에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이 비유는 신자 개개인이 구원의 옷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걸맞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목회적 통찰을 제공한다.
Ⅵ. 창세기 3장의 가죽옷: 한 벌의 옷 안에 담긴 이중적 의미
1. 무화과나무 잎과 인간의 자기의
창세기 3:7은 인간이 타락한 후 자신의 벌거벗음을 인식하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여 입었더라”고 기록한다. 이는 인간이 죄와 수치를 감추기 위해 스스로 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를 “자기 의의 시작”(initium iustitiae propria)이라 하였고, 칼빈 또한 “하나님 없이 의로움을 세우려는 헛된 시도”로 비판하였다(Calvin, Commentary on Genesis, 1554).
무화과나무 잎은 본질적으로 지속성과 실효성이 없는 ‘인간적 구원 시도’의 상징이며, 이는 바울이 로마서 10:3에서 말한 “자기 의를 세우려 힘쓰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는 구절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스스로의 죄를 덮을 능력이 없으며, 이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다른 옷’이 필요함을 전제한다.
2. 가죽옷의 상징성과 복음의 구조
창세기 3:21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는 구절로, 하나님의 은혜가 주도적으로 개입된 새로운 ‘덮음의 옷’을 선포한다. 가죽옷은 단순한 보온이나 체면 차원의 의복이 아니라, ‘희생을 전제로 한 덮음’이다. 이는 히브리서 9:22의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원리를 암시하며, 최초의 구속적 상징으로 해석된다(Hamilton, The Book of Genesis, NICOT, 1990).
여기서 ‘가죽’이라는 소재는 동물의 죽음을 내포하며, 이는 곧 ‘죄의 대가로서의 죽음’과 ‘대속적 희생’을 상징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하는 것으로, 초기 교부 이레니우스도 이를 “복음의 모형적 선포”(proleptic gospel proclamation)로 간주하였다(Against Heresies, IV.21.10). 즉, 가죽옷은 하나님의 주도적 구원과 복음의 은혜를 미리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3. 속옷과 겉옷의 통합적 은유
창세기의 가죽옷은 외형상 한 벌의 옷이다. 그러나 그 신학적 기능은 이중적이다. 첫째, 그 옷은 인간의 수치를 덮는 기능으로 칭의의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입히신 의는 외부로부터 온 선물이며,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둘째, 그 옷은 인간이 다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할 새로운 정체성과 방향성을 부여하는 삶의 출발점으로, 성화의 여정을 시작하게 한다.
이처럼 가죽옷은 ‘한 벌의 옷이지만 두 가지 기능’을 지닌 통합적 은유로 이해된다. 이는 앞서 살펴본 제사장의 옷, 전신 갑주, 그리고 ‘옷 입음’ 본문들과 일관된 구조를 형성한다. 즉, 구원은 단지 칭의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성화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이며, 이 둘은 한 벌의 구속사적 옷으로 연결되어 있다.
브루에그만은 이 장면을 두고 “하나님께서 입히신 옷은 단지 과거의 죄를 덮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을 다시 하나님의 세계로 소환하는 구속의 시작”이라고 평하였다(Brueggemann, Genesis, Interpretation Series, 1982). 따라서 창세기 3장의 가죽옷은 복음의 본질을 응축한 상징이며, 칭의와 성화를 아우르는 은혜의 한 벌 옷으로 읽힐 수 있다.
Ⅶ. 결론: 한 벌의 옷을 입은 자의 삶
1. 통합된 구원의 삶
본 논문은 성경의 ‘의의 옷’에 대한 상징과 제사장의 복식을 중심으로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지 않고 통합된 구조 속에서 신자에게 주어졌음을 논증하였다. 구원은 단지 법적 선언에 머무는 칭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언에 합당한 실천적 변화로서의 성화를 수반한다. 이는 루터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선언뿐 아니라, 칼빈의 “의롭게 된 자는 반드시 거룩해진다”는 명제를 함께 부르짖는 복음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한 벌의 옷’을 입은 자로서, 죄와 수치를 덮는 속옷(칭의)을 받았을 뿐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겉옷(성화)을 함께 받아 입은 자이다. 이 옷은 단절된 이중 구조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내적 정체성과 외적 실천이 함께 주어지는 구속사적 연합의 상징이다(Murray, Principles of Conduct, 1957).
2. 목회적, 실천적 함의
현대 교회는 흔히 두 가지 극단을 마주한다. 하나는 ‘칭의만 강조하고 성화는 무의미하다’는 무율법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성화의 수준이 칭의의 증명이다’라는 율법주의적 열심이다. 이 두 극단 모두 구원을 왜곡시키는 오류이며, 신자에게는 자유와 두려움 중 어느 것도 온전한 복음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 벌의 옷’이라는 비유는 이러한 왜곡을 교정하는 데 매우 유익한 목회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이 비유는 신자에게 다음을 상기시킨다: 첫째,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전적인 은혜이며 내가 만든 옷이 아니다(사 61:10). 둘째, 그 옷에 걸맞은 삶은 주어진 은혜에 대한 감사로 살아가는 성화의 여정이며,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갈 5:25). 셋째, 나는 이 옷을 입고 세상 앞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며, 나의 삶은 복음이 입혀준 옷의 향기를 드러내야 한다(고후 2:15).
3. 신자에게 주어진 복음의 책임
복음은 은혜의 선물이지만, 동시에 책임의 부름이다. ‘한 벌의 옷’은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살아감의 통합된 상징이며, 이는 신자가 날마다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정체성이다.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고 말했을 때, 그는 이 옷이 단지 과거의 구원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거룩한 실천을 요구하는 지속적 현실임을 강조한 것이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을 뿐 아니라, 그 의에 따라 걸어가야 한다. 이 옷은 우리를 보호할 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와 삶을 새롭게 구성한다”(The Cross of Christ, 1986).
결론적으로, 구원은 ‘한 벌의 옷’이다. 그 옷은 하나님이 입히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자랑할 수 없고, 그저 감사함으로 간직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 옷은 반드시 드러나야 하며, 세상이 그 옷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복음을 입은 자로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