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오이코도메’와 ‘오이코노모스’ 개념에 근거한 공예배 청지기론 소고

egeiro 2025. 5. 22. 11:58

1장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21세기 현대 교회는 심각한 개인주의적 신앙 경향비참여적 예배 문화에 직면해 있다. 개인의 영적 체험이나 감정 중심의 신앙은 공동체성과 예배 참여의 책임을 약화시켰고, 이는 예배를 단순히 공급받는 서비스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점차 교회 공동체의 연합성과 공예배의 본질을 훼손하며, 예배를 통해 세워져야 할 ’(οκοδομή)의 목적을 상실하게 한다(김세윤, 2007; Peterson, 1992).

예배는 단지 개인의 신앙 충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하나님의 임재를 함께 경험하고, 공동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청지기적 행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예배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유형 교회가 지닌 본질적 기능이며, 그 회복 없이는 교회 생태계의 건강한 갱신이 불가능하다(Barth, 1956; 정훈택, 2015).

 

2. 문제 제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무형 교회의 영적 정체성에만 집중하고, 유형 교회로서의 공동체성과 공예배 질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성도들은 공동체 예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교회에 속해 있다는 신앙적 자기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하며, 지체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섬기는 행위 속에서 교회됨이 실현됨을 강조한다(4:1116; 고전 12:1227).

특히 고린도전서 14장은 당시 고린도 교회의 은사 사용의 혼란공예배 내 질서의 붕괴를 다루면서, ‘덕을 세움’(οκοδομή)질서’(τάξις)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본문은 오늘날 공예배에 청지기적 책임을 되살리는 데 매우 적절한 신학적 자원을 제공한다.

 

3. 연구 목적

본 논문은 고린도전서 14:26, 40절을 중심 본문으로 삼아, ‘오이코도메’(οκοδομή)오이코노모스’(οκονόμος)라는 개념을 통해 공예배의 본질과 교회 공동체의 청지기적 사명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공예배는 단순한 예식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질서를 세우고 덕을 세우는 참여적 행위임을 밝히고, 현대 교회가 잃어버린 공예배의 공동체적 성격과 책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신학적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4. 연구 방법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접근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첫째, 고린도전서 14:26, 40 본문에 대한 헬라어 원문 분석을 통해 핵심 개념(οκοδομή, τάξις, εσχημόνως )의 신학적 의미를 규명한다.
둘째, 교회사적 자료(디다케, 저스틴, 어거스틴, 루터 등)를 통해 예배의 공동체성과 질서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시도한다.
셋째, 현대 예배신학자들의 논의(Peterson, White, Dawn )를 검토하며, 공예배에 대한 청지기적 참여의 회복 가능성을 모색한다.
넷째, 한국 교회 현실 속에서의 적용 가능성과 실천적 제언을 시도함으로써 이론과 실제를 통합한다.

 

2장 본문의 신학적 해석: 고린도전서 14:26, 40

1. 본문의 배경: 고린도 교회의 예배 혼란과 은사 남용

고린도전서 12장부터 14장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 내의 은사 문제와 공동체 질서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훈한 부분이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공동체였지만, 개인의 은사 사용이 공동체 유익보다 우선시되는 무질서한 예배 양상이 발생하고 있었다(고전 14:2333). 방언, 예언, 계시 등은 성령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잃은 공예배는 오히려 교회의 유익과 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14:26),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14:40)고 권면하며, 공예배의 목적이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는 예배가 청지기적 질서안에서 드려져야 함을 암시한다(Morris, 1985).

 

2. 주요 구절 분석

2.1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14:26) – οκοδομή

덕을 세운다는 표현은 헬라어 οκοδομή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문자적으로는 집을 세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οκοδομή개인 신앙의 성장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영적 행위를 의미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14:19; 4:12; 고전 10:23).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의 은사 사용이 개인의 만족이나 자기 과시가 아닌, 공동체 전체를 유익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본 구절을 통해 강조한 것이다(Horsley, 1998).

특히 예배의 다양한 요소들(찬송, 가르침, 계시, 방언, 통역)모두 공동체를 세우는 오이코도메의 수단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공예배는 '은혜의 공급처'가 아니라 '공동체 세움의 장'이며, 이 안에서 성도는 수동적 청중이 아니라 능동적 청지기로 서야 한다.

 

2.2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14:40) – καττάξιν

헬라어 καττάξιν질서대로, 정연하게라는 의미를 갖는 전치사 κατ와 명사 τάξις(질서, 배열)로 구성된 표현이다. 본래 군사적 배열이나 공적인 회의의 절차적 질서를 의미하던 단어가 공예배의 구조와 절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다. 바울은 단지 외형적 정돈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예배의 존엄성과 영적 품위를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바울은 이 구절 앞에서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평화의 하나님이시다"(14:33)고 언급한다. 이는 예배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자리이며, 혼돈이 아닌 조화, 자기중심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예배 질서를 회복해야 함을 시사한다(Bruce, 1971).

 

3. ‘오이코도메오이코노모스의 신학적 연관성

오이코도메’(οκοδομή)오이코노모스’(οκονόμος)는 모두 οκος()에서 파생된 단어로, 각각 세움의 목적관리자의 역할을 지닌다. ,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집이며(2:1922), 성도는 이 집을 청지기적 책임감으로 관리하는 이들이다(고전 4:12).

성도들은 공예배 안에서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닌, ‘교회 공동체라는 집을 함께 세워가는 청지기로 부름 받았다. 바울은 디도서 1:7에서도 장로를 하나님의 청지기”(οκονόμος θεοῦ)라 부르며, 교회 공동체의 관리 책임이 일부 리더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이는 모든 성도에게 적용 가능한 신학적 명제이며, 공예배에 있어 각 구성원이 덕을 세우는역할을 맡고 있다는 책임을 의미한다(Green, 2004).

 


3장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의 균형적 이해

1. 전통적 교회론의 개요

교회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초대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전해 왔으며, 특히 무형 교회’(invisible church)유형 교회’(visible church)의 개념은 교회론의 핵심 구분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어거스틴(Augustine)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에서, 이 세상 속에서 보이는 교회와 진정한 거듭남의 표지를 지닌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별하면서,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있음을 인정하였다(Augustine, City of God, Book XX).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와 칼빈(John Calvin)은 이 구분을 더욱 신학적으로 구체화하였다. 루터는 교회를 말씀과 성례가 올바르게 시행되는 곳”(where the Word is rightly preached and the sacraments rightly administered)으로 규정하며 유형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진정한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믿음의 무리에 있다고 보았다(Luther, 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 1520).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무형 교회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택자들의 공동체이며, 유형 교회는 이 무형 교회가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형태라고 설명하였다(Calvin, Institutes, IV.1.79).

 

2.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의 관계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는 본질적으로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상보적이고 유기적인 관계 안에 있는 동일한 교회의 두 차원이다. 무형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신자들의 영적 실재를 가리키며, 유형 교회는 이 신자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모이는 장소, 예배, 직분의 구조를 통해 드러난다(김균진, 2006).

문제는 현대 교회 내에서 무형 교회를 강조하는 신학이 때때로 유형 교회의 중요성과 구조적 질서를 불필요한 제도주의 혹은 형식주의로 폄하하는 경향으로 발전한다는 데 있다. 이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믿음이다라는 표현을 넘어서, 예배 공동체로서의 구체적 참여 없이도 교회에 속해 있다고 여기는 영적 개인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Dawn, 1995).

그러나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가시적이고 실제적인 모임을 통해 형성되고 성장하는 공동체임을 강조한다(4:1116; 2:4247). 이러한 공동체는 성례전과 설교, 기도, 교제를 통해 성장하며, 그 중심에는 공예배가 있다. 다시 말해 유형 교회는 무형 교회의 실체를 구체화하는 공간이자 수단이다.

 

3. 균형 교회론의 실천적 의미

설교 균형잡힌 교회관(2)”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무형 교회에 속한 자는 유형 교회에 반드시 참여하게 된다는 선언은 교회론적 균형을 담고 있다. 참된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자라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형제를 섬기고, 질서를 따라 덕을 세우는 실천으로 나타난다.

유형 교회는 단지 외형적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적 구원의 장소이며, 성령의 은사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자리다(고전 12:47). 그러므로 교회는 가시적 공동체로서 회중 예배, 교제, 헌신을 통해 무형 교회의 신앙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집’(오이코도메)의 장이 된다.

청지기론의 관점에서 볼 때, 무형 교회에 속한 성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과 은사를 따라 유형 교회 안에서 섬기고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공예배를 중심으로 세워지는 교회 생태계의 회복과 지속 가능성의 토대가 된다(Barth, 1956).

 

 

4장 공예배의 질서와 청지기적 참여

1. 예배 구성 요소의 신학적 의미

고린도전서 14:26은 공예배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은 단순한 열거가 아닌, 공예배의 구성 요소들이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암시한다.

찬송시(ψαλμός):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선언하며, 예배의 시작을 영적 집중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22:3; 3:16).

가르침(διδαχή): 이는 사도적 전통을 이어가는 설교 혹은 교리 교육을 뜻하며, 예배 안에서의 교회의 교훈 기능을 나타낸다(딤후 4:2).

계시(ποκάλυψις): 개인이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예언과 방언의 기능과 연결된다.

방언과 통역(γλσσα – διερμηνεία): 방언은 성령의 은사이지만, 통역을 통해 공동체가 이해할 수 있을 때에만 공예배 안에서 유익하다(고전 14:528).

이 모든 요소는 성도 개인의 만족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덕으로 세우기 위한질서 있는 예배라는 목적 안에서 조율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공예배를 단지 예전적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은혜의 플랫폼으로 이해하도록 한다(Peterson, 1992).

 

2. 디다케와 저스틴의 기록에 나타난 초대교회 예배 질서

초기 교회는 이미 공예배의 질서를 세우는 데 상당한 신학적 고민과 실천적 지침을 갖고 있었다. 디다케(Didachē, 주후 1세기 말경)는 주일 예배에서 행해지는 기도, 성찬, 윤리적 권면 등을 구조화하며, 공예배가 무질서한 은사 남용이 아닌, 성령 안의 질서와 청지기적 참여를 요구하는 공동행위임을 보여준다(Draper, 1996).

또한 저스틴 순교자(Justin Martyr)1변증서(First Apology, AD 150)에서 예배의 전형적 순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경 봉독, 설교, 공동 기도, 성찬, 헌금. 이는 초대교회 예배가 이미 신학적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 있었으며, 회중이 예배의 능동적 참여자였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Justin, First Apology, ch. 67).

, 예배는 무한한 은혜의 발산이자, ‘구성원들의 질서 있고 공동체적인 응답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적 영적 실천의 장이었다.

 

3. 예배에 대한 소비자가 아닌 청지기로서의 태도 회복

오늘날 많은 교회 성도들은 예배를 마치 제공받는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자신이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를 중심으로 예배의 가치를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신약의 공예배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바울은 고전 14장에서 성도의 은사 사용이 자기 유익이 아닌 공동체 유익과 덕의 세움을 향해야 한다고 명확히 한다(고전 14:12).

청지기(οκονόμος)는 단순한 집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맡아 질서를 유지하고 덕을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는 책임자(1:7). 따라서 공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는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공동체를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은사와 자원을 활용하는 책임 있는 청지기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청지기적 태도는 예배 시간의 전 과정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헌신의 시간으로 만들며, 성도 각자의 존재 방식 자체를 예배하는 자로 형성한다(Rom 12:12; Dawn, 1995).

 

 

5장 결론 및 제언

1. 연구 요약

본 논문은 고린도전서 14:26, 40을 중심으로 하여, ‘오이코도메’(οκοδομή)오이코노모스’(οκονόμος)라는 신약성경의 핵심 개념을 통해 공예배의 본질과 공동체적 책임성 회복을 모색하였다.

1장에서는 현대 교회 내에서 드러나는 개인주의적 신앙과 비참여적 예배 문화의 확산을 문제로 제기하고, 공예배의 청지기적 성격 회복이 절실함을 주장하였다.
2장에서는 고린도전서 14장의 문맥과 원어 분석을 통해, ‘덕을 세움질서라는 예배의 본질적 목적을 밝히고, 예배가 청지기적 책임을 전제로 한 공동체 행위임을 확인하였다.
3장에서는 교회론의 전통 속에서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의 관계를 고찰하며, 참된 신앙은 유형 교회로 나타나야 하며, 공예배를 통해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균형적 입장을 제시하였다.
4장에서는 초대교회 문헌을 통해 예배 질서의 역사성과 신학적 구조를 확인하고, 오늘날 성도들이 소비자가 아닌 청지기로 예배에 참여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상의 논의는 오늘날 공예배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덕으로 세우는 성령의 사역이자, 성도 각자의 청지기적 참여를 요구하는 장소임을 다시금 각성하게 한다.

 

2. 오늘날 교회를 향한 제언

첫째, 현대 교회는 예배 순서의 신학적 의미를 재확인하고 회복해야 한다. 찬송, 말씀, 기도, 성례 등 각 요소는 그 자체가 공동체를 세우는 수단이며, 정해진 순서와 절차는 은혜의 통로이자 공동체 질서의 표현이다. 예배가 품위 있게 질서대로”(고전 14:40) 진행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길이다.

둘째, 성도들은 공예배를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사명으로의 참여로 인식해야 한다. 이는 예배 인도자만이 아니라 회중 전체가 각자의 은사를 따라 교회를 세우는 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함을 뜻한다. , 성도는 덕을 세우는 청지기로 부름 받았으며, 이는 단순한 출석이 아닌 공동체적 책임 수행의 자리로서 예배를 이해하는 태도를 요구한다.

셋째, 공예배는 교회의 형식이 아니라 핵심이다. 무형 교회만을 강조하는 흐름은 자칫 공동체성과 책임의 구조를 해체할 수 있으며, 교회는 언제나 모이는 공동체로서의 현실성을 가지고 성례와 말씀 중심의 예배 속에서 존재해야 한다.

 

3. 후속 연구 방향

본 논문은 오이코도메와 오이코노모스 개념을 통해 공예배의 본질을 조명하였으나, 다음의 후속 연구들이 요청된다.

청지기 신학의 전 성경적 흐름(창조-타락-구속-성화)에 따른 예배 이해

공예배 참여와 직분 이해의 관계성: 장로, 집사, 평신도 청지기의 참여 범위

교단별(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공예배 질서의 신학적 근거와 청지기 적용 비교

현대 디지털 예배 환경 속에서의 유형 교회 회복 방안: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회론의 통합적 전망

이러한 연구들은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 반성과 실천적 방향을 더욱 풍성하게 하며,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집(오이코도메)을 충실히 세워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