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로 보는 말씀

παρουσία(파루시아 parousia)

egeiro 2024. 7. 9. 15:27

G3952 παρουσία 파루시아 parousia
출현, 오심, 강림.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파루시아는 파레이미(G3918)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의 의미를 가진다.

(a) 파루시아는 '임재, 현존, 있음' presence(Aeschyl., Aristot.),

(b) '재산' property, '부, 번영' fortune, '수입' income(Plato), '군대, 병력' troops(Thuc.),

(c) '옴' coming, '도착' arrival, '강림' advent, '누군가 임석하기 위해 오는 것'(Soph., Eur., Thu., Polyb.)을 의미한다.

파루시아는 왕, 황제, 치리자와 같은 통치자의 도착에 대해서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Ptolemaic period)에서 주후 2세기까지의 군대의 도착에 대해서 까지도 전문적으로 사용되었다. 특별물품세와 각종 세금이 물품 비용을 치루는데서 강제 징수되었다. 희랍에서는 하드리안의 파루시아에서부터 새 시대가 열린다고 생각되었으며, 특별 방문기념 주화들이 한 황제의 파루시아를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곳에서 주조되었다. 이에 상응하는 라틴어는 아드벤투스(adventus)이다. 고린도(Corinth)와 파트라스(Patras)와 같은 도시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편지를 쓰던 당시에 다스렸던 네로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방문 주화를 주조했다. 이 동전들에는 아드벤투스 아우구스티 코린디(Adventus Aug[usti] Cor[inthi])와 아드벤투스 아우구스티(Adventus Augusti)라는 명각을 새겼다(참조: A. Deissmann Light from the Ancient East). 이로부터 사람들을 위해서 신들이 출현했다고 언급하는대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참조: Corp. Herm.), '나의 파루시아[parousia]는 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헬라의 신비 종교 관념들과 일치하는 것이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파루시아는 70인역본에서 마카베오이서 8:12에 군대의 침입에 대해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파루시아는 신약성경에서 24회 나오며, 마태복음(4회), 바울서신(14회), 야고보서(2회), 베드로후서(3회) 요한일서(1회)에만 사용되었다.

(a) 파루시아는 문자적 의미로 '있음(현존)'과 '도착'을 의미한다. 바울만이 이러한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① 고전 16:7에서 바울은 스데바나가 온 것을 기뻐하고 있다: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② 고후 7:6; 고후 7:7에서 바울은 디도의 도착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 "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③ 빌 1:26(그리고 빌 2:12)에서 바울은 자기가 빌립보에 온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하려 함이라".

④ 고후 10:10에서 바울의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는 질책을 바울은 겪어야 했다: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b) 마태복음 24장에서 파루시아는 그것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에 나타난다.

① 마 24:3에서 제자들이 주의 파루시아의 징조에 대하여 묻는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② 예수님의 대답에서 인자의 오심은 미래의 일이며(마 24:39), 그 날짜는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으며(마 24:36), 그날은 갑자기 그리고 사람들이 전적으로 현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어느 때에 임할 것이다(마 24:27; 마 24:37 이하)고 설명하신다.

(c) 예수님의 파루시아에 대한 언급과 그의 죽음과 부활과 더불어 파루시아 사상은 이 시대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것에 대한 교회의 기대와 관련을 맺게 되었다.

(d) 살전 4:15에서 파루시아에 대해 언급하는 최초의 신약성경 구절인데 이것은 바울이 인용한 주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의 말씀"에 대한 언급은,

① 마 24:30 이하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② 지금은 상실되어서 알려지지 않은 말씀의 인용문일 수도 있으며,

③ 은밀한 계시에 대한 언급(참조: 고후 12:1 이하; 갈 1:12; 엡 3:3; 행 21:10 이하)일 수도 있으며, 혹은

④ 바울이 그리스도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언명일 수도 있다(참조: 고전 2:16; 고전 7:10; 고전 7:12).(A. L. Moore).

여기에서 부활과 파루시아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이유는 파루시아가 일어날 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겪게될 불리한 점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며, 살아있는 자가 누릴 유리한 점도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 고전 15:23에서도 위와 동일한 사상을 채택하여, 그 결정적 순간에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바울은 파루시아를 엄밀한 신학적 의미로 나타낼 때 대개 전치사 엔(G1722)을 그 단어 앞에 사용하고 있다. 살전 4:15에서만 에이스(G1519)라는 전치사가 나온다. 파루시아는 확실히 여러 범주 사람들도 포함할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이중의 부활이 있어, 그 사이에 천년왕국이 있다거나 혹은 연대순으로 체계화된 종말론적 사건들이 있음을 염두에 두었다는 말은 아니다(참조: W. G. Kummel).

(f) 살전 5:23에서 바울은 주님의 파루시아를 생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결케하시는 행위만 그 날의 시험에 대비하여 신자들을 대비시킬 수 있음을 언급한다. 바울은 또한 성결을 보존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성결은 그날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보존을 뜻하는 기도가 그 날까지 연속되기 때문이다(A. E. Airthart).

(g) 살전 2:18; 살전 2:19에 보면 비록 사단의 농간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와 갈라서게 되었으나, 바울은 여전히 이 교회를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그의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으로 묘사하고 있다.

(h) 데살로니가후서는 분명히 또 다른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체험되어진 그리스도의 임재와 미래 어느날에 있을(유대 묵시문학적) 파루시아 사이에는 분명한 대립이 있다: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후 2:1-살후 2:2).

이 서신은 실제로는 여전히 미래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사건들을 현재에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박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바울은 사단과 그리스도의 파루시아가 있기 전에 있을 불법한 자의 파루시아에 대해서 격렬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라"(살후 2:8; 살후 2:9 이하).

(i) 야고보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지연됨에 따라 사람들은 그 날이 실제로 임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고보는 약 5:7; 약 5:8에서 인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j) 베드로후서에서 신자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파루시아를 계속해서 기대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①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② 벧후 3: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③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k)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참조: A. Oepke; G. Braumann; Walter Bauer; J. H. Thayer).